동기는 가격이 너무 싸다는 것이었다. 단돈 139달러. 배송비(20불)와 관세(약 32,000원)를 포함해도 20만원이 조금 넘는다. 와이파이까지 지원되는데, 이정도 가격이면 정말 만족스럽다. 20만원이면, 겨우(?) IT관련 서적 몇 권이다. 게다가, 무려 한글도 지원한다. 배송은 출발 4일만에 도착. 그것도 토요일과 일요일이 낀 상태. 아마존에서 책을 받는 속도와는 비교 불가. 다만, 당시에는 품절이라 대기시간이 있었다.
생김새는 깔끔하다. 그냥 군더더기 없는 수준. 키보드의 질감은 약간 거칠어서, 만지면, 키보드구나 알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기는 버튼이 좌우에 두 개씩 있는데, 오른쪽으로 넘기는 버튼이 더 크다. 처음에는 페이지버튼이 좌우 대칭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책을 읽다가 뒤로 가는 경우가 적은 만큼, 앞으로 넘기는 버튼이 더 커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240g의 무게는 어떤 자세로 사용해도 부담 없을 정도로, 충분히 가볍다.
화면은 아주 편안하게 다가온다. 해상도가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600×800), 그것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부드럽게 보인다. 일반 책을 읽는 느낌과 상당히 흡사해서, 모니터화면으로 문서를 읽는 것과는 확실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전자잉크의 특성상, 페이지전환시 잔상이 생기지만, 사용에 문제를 줄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화면의 부분적인 갱신이 일어날 경우(예를 들어 사전을 찾아보는 경우 등), 갱신전의 화면이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페이지를 전부 갱신하는 경우는 이런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 북큐브 B-815와 비교해보니, 콘트라스트와 전환속도 모두 두드러질 정도로 차이가 났다(긍정적 의미).
한글을 포함해서 일본어와 중국어도 지원한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뒷면의 한국 전파인증 마크와 한글 지원은, 배송국가에 한국을 포함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아마존의 변환 서비스를 이용하면 좀 더 괜찮은 한글폰트를 볼 수 있다지만, 그게 아니라면, 평생 사용해본 적도, 사용할 일도 없는 한글폰트를 맞닥뜨릴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어와 중국에는 읽을만한 수준이다.
책을 구입하는 과정은 정말 간단하며, 많은 킨들 책들이 무료로 제공되기도 한다. 적어도 아마존에서 책을 사려한다면, 킨들에디션은 매력적인 선택이다. 내가 산 9.99불짜리 책을 새 책으로 사려면, 최소한 9불이상 줘야 한다. 비슷하다고? 아마, YES24에서 구입하는 것이라면, 선뜻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북미에 산다고 해도 비슷할 것이다. 킨들로 10불이 넘을 배송비와 보름가량의 배송시간을 아낄 수 있으므로, 분명히 이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일부 책들은, 가격이 비싸다. 아마존에서 개인셀러가 파는 책들의 가격은, 아마존이 파는 가격보다 일반적으로 더 저렴하다. 새 책이라면 그 차이가 큰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위시리스트에 담긴 ‘A Lion Called Christian’은 킨들에디션이 9.06불이다. 페이퍼백이 10.07불이니 그럭저럭 봐줄 만 하지만, 개인셀러가 파는 중고 하드커버는 단돈 0.01불이다. 여기에 해외배송을 하면 대략 14불정도의 금액이 나오는데, 이런 경우는 매우 망설여 진다. 중고 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 최소한 개인셀러가 파는 새 책보다는 저렴해야 한다. 아마존에서 개인셀러가 파는 중고 책들은 상태가 완벽한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내 경험에 Like New라고 설명된 중고 책은 새 책이나 다름 없었고, 이것이 더 싸다면, 난 중고로 산다.
앞으로도 킨들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단, 내가 줄을 그으면서 읽는 책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다. 나에게 있어서 소설이나 에세이가 바로 그런 책들이다. 학습서를 읽을 때면, 난 언제나 책에 줄을 긋는다. 물론, 킨들에서도 줄을 그을 수 있고, 또 주석을 달 수도 있다. 책갈피를 꽂아둘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종이 책처럼 빨리 찾을 수 있게 하지는 못한다. 템플릿 파라미터를 갖는 C++ 템플릿을 찾아보기 위해서 수백 번 다음페이지 버튼을 누를 수는 없지 않은가(목차에서 링크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으면 정말 이래야 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킨들은 정말 쓸만하다. 물론,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킨들을 산다고 책을 읽을 가능성은 그다지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